2010/02/06 20:01
[끄적 인다]
경남 진주시 금산면 속사리 사서함 306-16호 신병 1대대 1중대 4소대 42번 권순범 훈령병
우편번호 660-929
고마 있는 곳입니다. 2월 26일까지 편지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운 고마에게 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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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6 23:47
[끄적 인다]
토요일을 보냈다.
어제 대구에 내려왔다. 앞으로 몇달 간 서울에 가지 못한다. 그래서 집을 나서기 전, 편지들이 담겨 있는 서랍을 열어 보았다. 꽤 오래 전의 편지들까지 모두 차곡차곡 쌓여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최근에 받은 편지들. 하나하나 보낸 이를 확인하고 읽어 보았다. 한별이가 준 편지 두 통, 찬우쌤이 입대 직전 써준 편지, 은별쌤의 카드, 지슈쌤의 귀여운 쪽지들, 나현쌤이 책을 선물하며 함께 준 편지도 한 통 있었다. 경희가 수줍게 쓴 편지도 있었고, 상진이랑 친해진지 얼마 안 되었던 작년 4월 즈음 받았던 카드, 윤종이가 작년 1월에 생일 선물과 함께 주었던 편지, 어느 해 크리스마스 희선이가 써준 카드(그 약속은 아마도 지금까지 지키지 못했고 앞으로도 지키지 못할 듯?), 한장 가득 고맙고 따뜻했던 다히쌤의 편지, 나리님이 보내 주셨던 깜짝 카드까지. 몇몇 친구들은 책을 선물하며 면지에 글귀를 적어 편지를 대신하기도 했었다. 나도 요즘은 그런 식으로 할 이야기를 글로 적는다.
'이 장면을 소재 삼아 무언가 써봐야지'라고 생각했었지만 딱히 쓸 거리가 없다. 그리 편하지 않은 고향에 내려와 입대를 이틀 앞두고 컴퓨터를 하는 기분일 뿐이다. 보지 못한 버라이어티프로그램 두어 개를 다운받아 볼 생각이다.
2010/01/14 23:44
[책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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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에 나온 초판본을 헌책방에서 구입했다. 그 뒤로 '열린책들'에서 페이퍼백으로 내기도 했고, 지금은 상 하로 나뉜 양장본으로 판매하고 있다. 6,800원 짜리 책이 2만원이 된 셈이다. 그치만 92년에 나온 책임에도 불구하고 표지와 종이의 질감, 책의 장정 상태, 글씨체 등이 전혀 구리지 않다. 역시 열린책들, 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달까.
작품은 분명 인상적이다. 구성은 '작가', '편집자', '비평가, '독자'로 나뉘어 있다. 이것들은 문학, 그 중에서도 '소설'과 관계된 대표적인 사회적 지위들이다.(전부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각 장마다 그 지위를 대변하는 인물의 입을 빌어 사건은 진행된다. 같은 사건을 두고 네 개의 다른 시선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고, 동시에 사건(시간)도 나아간다. 그 덕에 이야기 전개에서도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꽤 두껍다. 그리 어렵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문학의 사회적 역할과 그것의 완성도를 가늠하는 척도를 두고 각각의 인물들이 서로 다투기도 한다. 출판계 현장에서, 지역 대학의 심포지움에서, 신문 서평란에서.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소설이 어떤 식으로 출판되는지, 어떻게 소통되는지, 어떻게 성공하는지 등 구체적인 모습도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다. 그 구체적인 장면을 일일이, 문장을 아끼지 않고 그려낸다. 상징적이지도 않고 비유가 많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작가 제임스 미치너는 단지 충실하게 작가 '루카스 요더'의 생각과 일상을, 편집자 '이본느 마르멜르'의 철학과 출판계의 일상을, 비평가 '스트라이베르트'의 치밀한 이론과 학자적 삶을, 독자 '제인 갈런드'의 문학에 대한 애정을 보여줄 뿐이다.
작품은 각 장마다 그 인물의 입을 빌어 말할 뿐이기 때문에, '작가' 장에서는 작가의 입을 빌어 비평가를 비판한다. '편집자', '비평가', '독자' 장도 마찬가지다. '비평가'는 나머지 세 인물들과 다소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는 문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는 엘리트주의적 이지만, 문화적으로는 전혀 보수적이지 않다. 더 새로운 형식, 더 새로운 문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작가 '루카스 요더'의 작품을 격렬하게 비판한다.
'작가' 편은 뒤로 가면서 조금 지루해질 수도 있다. '편집자' 편은 그럭저럭 재밌게 봐줄 만하다. '비평가' 부분부터 아주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좀 생각이 비슷하다. 나 자신의 위치를 네 인물 중 비평가에게 가장 가깝게 두고 있어서일 수도 있겠다. 거기에 더해 '독자' 부분으로 넘어가면서 사건이 일어나고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되어 더욱 흥미로워진다.
한국의 현실로 옮겨와 보면. 작가 '루카스 요더'는 (황석영의 말을 빌자면) 한국의 '인생파 소설가'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한마디로, 고통스러운 현실에 충실한 리얼리즘 소설가들 말이다. 적절히 성공을 거두기도 하고, 사회적 의미도 찾을 수 있는. 편집자는 잘 모르지만, 대충 느낌을 들자면 문학동네에서 일할 법한 편집자? 문지는 그보다는 더 학적인 것 같다. 민음사는 이유를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출판사만의 고유하고 짙은 느낌이 별로 없다. 비평가는... 누가 좋을까. 비평가들도 잘 알지는 못해서. 다소 엘리트주의적인 그런 학자? 아마도 외국 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더 그럴 것 같다. 그리고 독자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렵지 않고 쉽게 쓴, 그러나 폭넓은 범위의 소설 애호가.
제임스 미치너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두 가지 관점을 두고 결과적으로 한쪽을 들어주는 모양새로 소설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그 결론에는 나도 동의하는 편이다. 소설이 '재미'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래서 그들은 어려운 소설은 싫다고 하는데, 사실 알고 보면 그런 사람들이 읽는 작품들 중에 어려운 작품도 적지 않게 있다. 그 '재미'라는 게 나는 미셸 투르니에의 소설도 재미있을 수 있고 뒤라스의 소설도 재미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흥미로운 소설이다.
작품은 분명 인상적이다. 구성은 '작가', '편집자', '비평가, '독자'로 나뉘어 있다. 이것들은 문학, 그 중에서도 '소설'과 관계된 대표적인 사회적 지위들이다.(전부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각 장마다 그 지위를 대변하는 인물의 입을 빌어 사건은 진행된다. 같은 사건을 두고 네 개의 다른 시선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고, 동시에 사건(시간)도 나아간다. 그 덕에 이야기 전개에서도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꽤 두껍다. 그리 어렵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문학의 사회적 역할과 그것의 완성도를 가늠하는 척도를 두고 각각의 인물들이 서로 다투기도 한다. 출판계 현장에서, 지역 대학의 심포지움에서, 신문 서평란에서.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소설이 어떤 식으로 출판되는지, 어떻게 소통되는지, 어떻게 성공하는지 등 구체적인 모습도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다. 그 구체적인 장면을 일일이, 문장을 아끼지 않고 그려낸다. 상징적이지도 않고 비유가 많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작가 제임스 미치너는 단지 충실하게 작가 '루카스 요더'의 생각과 일상을, 편집자 '이본느 마르멜르'의 철학과 출판계의 일상을, 비평가 '스트라이베르트'의 치밀한 이론과 학자적 삶을, 독자 '제인 갈런드'의 문학에 대한 애정을 보여줄 뿐이다.
작품은 각 장마다 그 인물의 입을 빌어 말할 뿐이기 때문에, '작가' 장에서는 작가의 입을 빌어 비평가를 비판한다. '편집자', '비평가', '독자' 장도 마찬가지다. '비평가'는 나머지 세 인물들과 다소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는 문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는 엘리트주의적 이지만, 문화적으로는 전혀 보수적이지 않다. 더 새로운 형식, 더 새로운 문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작가 '루카스 요더'의 작품을 격렬하게 비판한다.
'작가' 편은 뒤로 가면서 조금 지루해질 수도 있다. '편집자' 편은 그럭저럭 재밌게 봐줄 만하다. '비평가' 부분부터 아주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좀 생각이 비슷하다. 나 자신의 위치를 네 인물 중 비평가에게 가장 가깝게 두고 있어서일 수도 있겠다. 거기에 더해 '독자' 부분으로 넘어가면서 사건이 일어나고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되어 더욱 흥미로워진다.
한국의 현실로 옮겨와 보면. 작가 '루카스 요더'는 (황석영의 말을 빌자면) 한국의 '인생파 소설가'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한마디로, 고통스러운 현실에 충실한 리얼리즘 소설가들 말이다. 적절히 성공을 거두기도 하고, 사회적 의미도 찾을 수 있는. 편집자는 잘 모르지만, 대충 느낌을 들자면 문학동네에서 일할 법한 편집자? 문지는 그보다는 더 학적인 것 같다. 민음사는 이유를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출판사만의 고유하고 짙은 느낌이 별로 없다. 비평가는... 누가 좋을까. 비평가들도 잘 알지는 못해서. 다소 엘리트주의적인 그런 학자? 아마도 외국 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더 그럴 것 같다. 그리고 독자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렵지 않고 쉽게 쓴, 그러나 폭넓은 범위의 소설 애호가.
제임스 미치너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두 가지 관점을 두고 결과적으로 한쪽을 들어주는 모양새로 소설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그 결론에는 나도 동의하는 편이다. 소설이 '재미'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래서 그들은 어려운 소설은 싫다고 하는데, 사실 알고 보면 그런 사람들이 읽는 작품들 중에 어려운 작품도 적지 않게 있다. 그 '재미'라는 게 나는 미셸 투르니에의 소설도 재미있을 수 있고 뒤라스의 소설도 재미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흥미로운 소설이다.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주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고 또 그것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상기시켜 주는 작가의 역할이란 시대의 변화에 관계 없이 소중한 것이다. '작가'-97쪽
"인생이 길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 많은 걸......"
"인간 노력의 최고 진수를 탐구하는 것, 그것말고 삶의 진정한 의미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가 소설이라는 허구의 창조에 있어서 최고의 목표라고 설파한 것은 참다우면서도 온당한 인물의 창조,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인물의 창조란 온갖 역경 속에서 그 인물이 겪게 되는 정신적 변화를 여실하게 그림으로써 달성된다고 그는 믿었다. '편집자'-182쪽
"인간 노력의 최고 진수를 탐구하는 것, 그것말고 삶의 진정한 의미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가 소설이라는 허구의 창조에 있어서 최고의 목표라고 설파한 것은 참다우면서도 온당한 인물의 창조,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인물의 창조란 온갖 역경 속에서 그 인물이 겪게 되는 정신적 변화를 여실하게 그림으로써 달성된다고 그는 믿었다. '편집자'-182쪽
그들은 소설을 어떤 폭발적인 것, 즉 경이로움과 장엄한 계시적 광경으로 가득 차 있고, 평범한 행위에 대한 시적인 해석과 기묘하게 보이는 것에 대한 산문적 설명이 꽉 들어차 있는 그런 것으로 보았다. ... 생경한 이념들로 불꽃이 일듯 활기에 넘치고, 수많은 도전으로 폭풍이 일듯 힘이 넘치는 소설. 내가 이제 소설에서 구하는 것은 그렌쯜러 지역에 관한 또 하나의 산문시가 아니라, 나 같은 지각있는 사람이 어떻게 베노 라트너와 같이 자기 파괴적인 사람과 살면서 그 많은 세월을 허비할 수 있는지, ...(중략)... 그런 묘한 삶에 대한 설명이다. 이와 같은 내 의식의 놀라운 전환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볼 때면 나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자리를 지키세요, 루카스. 경의로운 친구여. 날카로운 칼날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신뢰할 만한 그대. 이 세상에서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않을 사람. 선한 일만 할 당신. 그러나 라트너, 당신이 옳았어요. 책에 관한 모든 토론에서 당신은 옳았어요. 당신은 우리들이 꿈도 꿔 보지 못한 것을 보았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죽은 거예요. 당신은 꿈은 꿨지만 그 꿈을 6만 개의 잘 꾸며진 단어들로 전환시키지 못했어요." '편집자'-246~247쪽
"혹 우리 대화를 엿듣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마 무슨 저런 재미없는 이야기를 저리 열심히 나눌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할 걸세. 맞아. 우리가 하는 일이란 고작해야 문학이라는 커다란 관목을 흔들어 뭐 떨어지는 것이 없나 땅바닥을 뒤지는 꼴이라네. 문학의 근간인 실제의 삶은 모두 우리 주위에 드러나 있는데 말일세." '비평가'-304쪽


